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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철이 참여한 동아일보 신년 좌담의 현장 사진(동아일보 1939년 1월1일).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신남철(1903~1958)은 박치우와 유사한 삶의 경로를 걸어갔으며, 박헌영, 김태준 등과 더불어 조선 공산주의 운동에 헌신한 철학자였다. 박치우와 더불어 20세기 한국 사회주의 사상의 중요한 경지를 이루었다.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적 인식론에 입각해 역사를 이해했으며, 변증법적 역사철학에 기반해 휴머니즘을 새롭게 개념화하고자 했다. 박치우의 사유가 순정한 공산주의였던 것에 비해, 그의 사유는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 사이에서 비틀거리면서 길을 찾아간 굴곡진 것이었다. 이돈화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새로운 인간[新人]’을 꿈꾸었으나 양자가 추구 할부이자 계산법 했던 네오-호모의 길은 서로 달랐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여러 갈래의 철학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그중 굵직한 것으로는 제 과학의 원리들을 메타적으로 사유한 인식론적 철학들과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을 사유한 철학들, 그리고 새롭게 도래한 역사에 부딪히면서 역사적-정치적 사유를 펼친 철학들이 있었다. 변증법을 근간 대출 으로 하는 철학자인 신남철은 첫번째 계열의 철학에서는 신칸트주의를, 두번째 계열의 철학에서는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비판했고, 변증법에 있어서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입장에서 헤겔적 변증법을 비판했다.
신남철은 실존주의 철학, 예컨대 하이데거의 철학을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을 고립시켜 그 속에서 썩고 있는 온갖 사악과 모순을 러시앤캐시 모델 조용히 바라보고 해석만 하는, 불안한 개인의 인간적 존재[현존재]를 분석만 하려는 철학에 불과한” 것으로서 혹평한다.(‘실존철학의 역사적 의의’, 1933) 헤겔의 경우는 변증법에 관한 한 마르크스의 선구자로서의 위상이 인정된다. 그러나 신남철은 헤겔―직접적으로는 당대의 신헤겔주의(신남철은 헤겔 자신에게서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그의 휴머니즘 불암산 과도 관련된다)―의 철학을 “자본주의를 수정 개량하면서 그것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한 것”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방법을 이른바 ‘헤겔의 정신’으로써 온건하게 만들어 자본주의의 ‘불가피적인 악’과 타협 조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나온 것”으로서 평가한다.(‘신헤겔주의와 그 비판’, 1931) 그리고 더 나아가 “신헤겔주의에서는 단순한 수정 타협이 아 건강보험납부확인서 니라 마르크스주의를 타도 절멸시키려는 파시즘이 도출되었다”고까지 일갈한다. 여기에서의 신헤겔주의는 19세기 말 이래 영미에서 전개된 사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대 유럽 대륙의 여러 헤겔적인 사조들을 일컫는다. 그 범위와 내용에 대한 규정이 분명하지가 않고, 또 그것을 파시즘에까지 연관시키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신년 좌담 기사(신건할 조선 문학의 성격)에 실린 신남철의 사진(1939년 1월1일).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또 하나의 사조인 신칸트주의에 관련해서, 신남철은 이 사조를 비판하면서 그 자신의 인식론을 전개한다. 칸트는 인식에 있어 주체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했다. 영국 경험론에서의 경험적 주체와는 달리, 칸트의 선험적 주체는 대상이 우리에게 내보이는 센스-데이터(사과의 경우라면, 붉은색, 신맛, 둥그런 형태 등등)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상 쪽으로 나아가 센스-데이터를 종합·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서는 이 종합·구성을 행할 때 대상에 투사되는 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틀은 의식의 틀이다. 하인리히 리케르트 등 신칸트학파에 이르면 의식의 틀이 언어의 틀로도 확장되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또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정신과학·역사과학의 정초로 나아가는 등 여러 변화가 보이지만, ‘신칸트학파’라는 이름 자체가 시사하듯이, 그 사유의 기본 틀은 칸트의 구성주의를 잇고 있다.
신남철은 이 인식론에 대해 그것에는 신체가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이 구성주의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구성의 틀에 있으며, 신체는 이 틀에게 인식 질료를 전달해주는 수용기(受容器) 이외의 것이 아니다(오늘날의 신경중심주의에서의 표상주의는 이 구도를 그대로 이어받고서, 다만 의식을 뇌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신체는 주체에게 인식 질료를 전달해주는 수용기가 아니라 그 자체가 구성 행위를 하는 주체―메를로퐁티의 용어로 신체-주체, 전(前)반성적 코기토―이다. 신체의 운동은 단순한 수용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 이미 표현의 활동이다. 물론 고도의 인식은 정신적 활동이지만, 신체의 활동과 정신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연속적이다. 인식은 신체와 정신의 통일체인 인간의 통일적 활동인 것이다. 이 통일적 활동은 곧 표현적인 활동이며, 그래서 신남철은 인식을 표상이 아니라 표현으로서 이해한다. 이것은 인식이 추상적 구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체적 구성 활동임을 뜻하는 동시에, 또한 단순한 모사가 아님을 뜻한다. 인식은 수동적인 모사도 아니고 추상적인, 정신적인 구성도 아니다. 그것은 신체와 세계 사이의 변증법적 운동을 토대로 하는 인간의 표현활동(‘변증법적 모사’)인 것이다.
신남철이 1926년에 입학했던 경성제국대학 예과의 전경.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식이 주체와 세계의 변증법을 기초로 한다는 것은 곧 인식이란 어떤 추상적인 공간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과정에서 이루어짐을 뜻한다. “주체적인 표현은 외부와 대상세계의 모든 관계와 다시 맞부딪치고 나아가는 하나의 복잡한 역사적인 과정”이다.(‘역사철학의 기초론: 인식과 신체’, 1937) 이 때문에 신남철에게 과학적 인식과 역사적 실천은 별개의 것이 아니며, 객관적 인식과 주체적 실천은 하나를 이룬다. 인식론과 역사철학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이런 사유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은 헤겔이다. 역사의 발전을 이루는 원리는 점진적인 단계들을 밟아 고양되는 인식으로서의 부정의 운동이다. 세계·역사는 이념들의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이며, 인간은 이 이념들의 운동에 스스로를 합치시킴으로써 (근본 실체로서의)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에 참여한다. ‘정신현상학’에서의 ‘노동’의 실천은 곧 이와 같은 합치와 참여를 개념화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신남철은 헤겔의 이런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거기에서 물질적 자연, 우연성, 신체적 행위 등에 대한 사유가 결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첫째, 헤겔에게서 자연은 정신 소외의 결과에 불과하다. 또, 그에게서 실천은 어디까지나 이념적인 지평에서 이해될 뿐 신체적 노동의 지평은 끝내 외면된다.
둘째, 우연성의 문제 또한 중요하다. 헤겔이 우연성의 문제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우연성―신남철의 맥락에서는 ‘우연적 실존’으로서의 개인―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 필연성을 획득하는 방식에 대해 사변했다. 신남철은 헤겔의 논의를 마르크스주의적 언어로 이렇게 파악한다. “역사라는 것은 우연적 가능성과 보편적 정신과의 통일의 구체적 영역이었다. 이 우연적 가능성은 노동하고 실천하는 계급, 민족 속의 인간 개인의 특수적 존재이고, 보편적 정신은 시대정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급의식, 혁명정신 또는 민족·국가의식이다. 이 우연적 가능성이 보편적 정신과 통일됨에 의해 전자는 구체적 필연성을 획득하는 것이다.”(‘역사의 발전과 개인의 실천’, 1945) 헤겔 사유의 기본 구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마르크스주의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아울러 신남철에게 우연(과 필연)의 문제는 박치우, 미키 기요시, 구키 슈조 등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운명’ 개념과 연관해 사유된다.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신남철은 헤겔 철학을 비판적으로 연구해 한국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세번째 문제는 주체적 실천의 문제이다. 헤겔의 사유에서 한 개인의 역사철학적 의미는 그가 얼마나 보편적 정신에 스스로를 합치해 나갈 수 있는가에 의해 평가된다. 그러나 신남철은 이에 대해 인간 개인의 주체적 실천을 강조한다. 헤겔에게 세계란 절대정신이 자신의 이념들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며, 개개인은 그 과정의 구현자들이다. 그는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오직 이념이 자기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의 수단의 분야[장](das Feld des Mittels)[일 뿐]이라고 규정했다.(‘역사에서의 이성’)” 그러나 신남철은 헤겔의 이런 사유에서 “역사 추진의 원동력을 이루는 노동적 생산의 사회적 체계 속에 나타나는 모순적 관계에서의, 인간 개인의 정치적 주체적 실천에 대한 자각은 분명하지 않았다. 이 개인은 어디까지나 궁극에 있어서는 신(神)이 이념적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역사의 발전과 개인의 실천’)
신남철은 이렇게 헤겔의 인식론-역사철학을 다각도로 비판했고, 특히 물질적 객관성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입장은 분명한 각을 이룬다(다만 신남철은 이 주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적 실존의 문제와 주체적 실천의 문제에 관한 그의 논의는 사실 헤겔 사유의 기본 구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그리고 한국 철학의 맥락으로 가져와 새롭게 사유한 것이었다.
신남철에게 참된 개인이란 역사적 일반자에게 봉사하는 개인이다. 역사는 개인에게 운명으로서 다가온다. 개인은 그 운명과 투쟁하면서 일반자를 실현한다. 박치우와 마찬가지로, 신남철은 숙명과 운명을 구분한다. 숙명은 자유를 부정하는 필연일 뿐이다. 그러나 운명은 인간의 자유를 시험하는 필연이다. 운명과의 투쟁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필연과 맞서는 자유의 투쟁인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결코 감격이나 애수의 동기는 되지 않는다. 운명의 이념의 심연은 ‘엄숙’(Ernst)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엄숙’에 의하여 인간은 스스로 세계와의 관련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역사의 발전과 개인의 실천’) 이런 구도는 곧 그가 높이 평가하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관류했던 ‘운명 vs 역능’(fortuna vs. virtù)의 구도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그는 헤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우연적 실존의 역할과 의의를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라는 틀 속에 용해시키기를 거부한다. 아울러 이러한 투쟁은 항상 물질적 객관성의 차원, 신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함도 역설된다.
이 점은 현재에 대한 그의 강조에서도 드러난다. 헤겔적 목적론에서 현재는 시간 전체의 한 매듭일 뿐이다. 그러나 신남철은 주체적 실천의 시간은 현재임을 지적한다. 현재는 역사적이고 주체적인 시간이며, 필연이 자유로 전환하는 투쟁의 시간이고 또 역사적 방향이 전환되는 시간이다. 그것은 사건의 시간으로서의 아이온의 시간인 것이다. 현재는 주체의 실천에 의해서 아이온의 시간이 된다. 달리 말해, 주체적 실천에 있어서만 시간은 현재가 된다. 이 현재에서 주체는 세계정신의 자기실현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 실천은 이런 희생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은 “자기를 헌신하고 방기하는 개인”이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의 운명은 개인을 가혹하게 몰아대지만, 바로 그런 시련에서 개인은 운명적인 비극을 사는 동시에 “이름 없는 혁명가”라는 위대한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개인이 헌신해야 할 일반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신남철 시대의 개인이 헌신해야 할 일반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신남철에게 그것은 곧 한민족의 “완전 해방”이었다. “조선의 완전 독립과 사회적인 해방이 끓어오르는 열정을 진보적 계급의 정치적 노선에 경주(傾注)함에 의해서만 완수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위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역사의 발전과 개인의 실천’) 신남철의 문제는 일제의 잔재를 타파하는 것, 그리고 민족, 계급, 문화라는 세 측면에서 한민족의 완전 해방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철학자 이정우.
철학자 이정우 l 서울대학교에서 미셸 푸코로 학위를 받았다. 대안공간 철학아카데미에서 시민 강좌를 열었고, 지금은 소운서원에서 후학 양성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철학사’ 4부작(2011~2024)을 펴냈고, 현재는 ‘소운 철학 대계’를 집필하고 있다.
신남철(1903~1958)은 박치우와 유사한 삶의 경로를 걸어갔으며, 박헌영, 김태준 등과 더불어 조선 공산주의 운동에 헌신한 철학자였다. 박치우와 더불어 20세기 한국 사회주의 사상의 중요한 경지를 이루었다.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적 인식론에 입각해 역사를 이해했으며, 변증법적 역사철학에 기반해 휴머니즘을 새롭게 개념화하고자 했다. 박치우의 사유가 순정한 공산주의였던 것에 비해, 그의 사유는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 사이에서 비틀거리면서 길을 찾아간 굴곡진 것이었다. 이돈화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새로운 인간[新人]’을 꿈꾸었으나 양자가 추구 할부이자 계산법 했던 네오-호모의 길은 서로 달랐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여러 갈래의 철학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그중 굵직한 것으로는 제 과학의 원리들을 메타적으로 사유한 인식론적 철학들과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을 사유한 철학들, 그리고 새롭게 도래한 역사에 부딪히면서 역사적-정치적 사유를 펼친 철학들이 있었다. 변증법을 근간 대출 으로 하는 철학자인 신남철은 첫번째 계열의 철학에서는 신칸트주의를, 두번째 계열의 철학에서는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비판했고, 변증법에 있어서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입장에서 헤겔적 변증법을 비판했다.
신남철은 실존주의 철학, 예컨대 하이데거의 철학을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을 고립시켜 그 속에서 썩고 있는 온갖 사악과 모순을 러시앤캐시 모델 조용히 바라보고 해석만 하는, 불안한 개인의 인간적 존재[현존재]를 분석만 하려는 철학에 불과한” 것으로서 혹평한다.(‘실존철학의 역사적 의의’, 1933) 헤겔의 경우는 변증법에 관한 한 마르크스의 선구자로서의 위상이 인정된다. 그러나 신남철은 헤겔―직접적으로는 당대의 신헤겔주의(신남철은 헤겔 자신에게서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그의 휴머니즘 불암산 과도 관련된다)―의 철학을 “자본주의를 수정 개량하면서 그것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한 것”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방법을 이른바 ‘헤겔의 정신’으로써 온건하게 만들어 자본주의의 ‘불가피적인 악’과 타협 조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나온 것”으로서 평가한다.(‘신헤겔주의와 그 비판’, 1931) 그리고 더 나아가 “신헤겔주의에서는 단순한 수정 타협이 아 건강보험납부확인서 니라 마르크스주의를 타도 절멸시키려는 파시즘이 도출되었다”고까지 일갈한다. 여기에서의 신헤겔주의는 19세기 말 이래 영미에서 전개된 사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대 유럽 대륙의 여러 헤겔적인 사조들을 일컫는다. 그 범위와 내용에 대한 규정이 분명하지가 않고, 또 그것을 파시즘에까지 연관시키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신년 좌담 기사(신건할 조선 문학의 성격)에 실린 신남철의 사진(1939년 1월1일).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또 하나의 사조인 신칸트주의에 관련해서, 신남철은 이 사조를 비판하면서 그 자신의 인식론을 전개한다. 칸트는 인식에 있어 주체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했다. 영국 경험론에서의 경험적 주체와는 달리, 칸트의 선험적 주체는 대상이 우리에게 내보이는 센스-데이터(사과의 경우라면, 붉은색, 신맛, 둥그런 형태 등등)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상 쪽으로 나아가 센스-데이터를 종합·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서는 이 종합·구성을 행할 때 대상에 투사되는 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틀은 의식의 틀이다. 하인리히 리케르트 등 신칸트학파에 이르면 의식의 틀이 언어의 틀로도 확장되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또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정신과학·역사과학의 정초로 나아가는 등 여러 변화가 보이지만, ‘신칸트학파’라는 이름 자체가 시사하듯이, 그 사유의 기본 틀은 칸트의 구성주의를 잇고 있다.
신남철은 이 인식론에 대해 그것에는 신체가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이 구성주의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구성의 틀에 있으며, 신체는 이 틀에게 인식 질료를 전달해주는 수용기(受容器) 이외의 것이 아니다(오늘날의 신경중심주의에서의 표상주의는 이 구도를 그대로 이어받고서, 다만 의식을 뇌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신체는 주체에게 인식 질료를 전달해주는 수용기가 아니라 그 자체가 구성 행위를 하는 주체―메를로퐁티의 용어로 신체-주체, 전(前)반성적 코기토―이다. 신체의 운동은 단순한 수용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 이미 표현의 활동이다. 물론 고도의 인식은 정신적 활동이지만, 신체의 활동과 정신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연속적이다. 인식은 신체와 정신의 통일체인 인간의 통일적 활동인 것이다. 이 통일적 활동은 곧 표현적인 활동이며, 그래서 신남철은 인식을 표상이 아니라 표현으로서 이해한다. 이것은 인식이 추상적 구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체적 구성 활동임을 뜻하는 동시에, 또한 단순한 모사가 아님을 뜻한다. 인식은 수동적인 모사도 아니고 추상적인, 정신적인 구성도 아니다. 그것은 신체와 세계 사이의 변증법적 운동을 토대로 하는 인간의 표현활동(‘변증법적 모사’)인 것이다.
신남철이 1926년에 입학했던 경성제국대학 예과의 전경.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식이 주체와 세계의 변증법을 기초로 한다는 것은 곧 인식이란 어떤 추상적인 공간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과정에서 이루어짐을 뜻한다. “주체적인 표현은 외부와 대상세계의 모든 관계와 다시 맞부딪치고 나아가는 하나의 복잡한 역사적인 과정”이다.(‘역사철학의 기초론: 인식과 신체’, 1937) 이 때문에 신남철에게 과학적 인식과 역사적 실천은 별개의 것이 아니며, 객관적 인식과 주체적 실천은 하나를 이룬다. 인식론과 역사철학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이런 사유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은 헤겔이다. 역사의 발전을 이루는 원리는 점진적인 단계들을 밟아 고양되는 인식으로서의 부정의 운동이다. 세계·역사는 이념들의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이며, 인간은 이 이념들의 운동에 스스로를 합치시킴으로써 (근본 실체로서의)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에 참여한다. ‘정신현상학’에서의 ‘노동’의 실천은 곧 이와 같은 합치와 참여를 개념화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신남철은 헤겔의 이런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거기에서 물질적 자연, 우연성, 신체적 행위 등에 대한 사유가 결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첫째, 헤겔에게서 자연은 정신 소외의 결과에 불과하다. 또, 그에게서 실천은 어디까지나 이념적인 지평에서 이해될 뿐 신체적 노동의 지평은 끝내 외면된다.
둘째, 우연성의 문제 또한 중요하다. 헤겔이 우연성의 문제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우연성―신남철의 맥락에서는 ‘우연적 실존’으로서의 개인―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 필연성을 획득하는 방식에 대해 사변했다. 신남철은 헤겔의 논의를 마르크스주의적 언어로 이렇게 파악한다. “역사라는 것은 우연적 가능성과 보편적 정신과의 통일의 구체적 영역이었다. 이 우연적 가능성은 노동하고 실천하는 계급, 민족 속의 인간 개인의 특수적 존재이고, 보편적 정신은 시대정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급의식, 혁명정신 또는 민족·국가의식이다. 이 우연적 가능성이 보편적 정신과 통일됨에 의해 전자는 구체적 필연성을 획득하는 것이다.”(‘역사의 발전과 개인의 실천’, 1945) 헤겔 사유의 기본 구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마르크스주의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아울러 신남철에게 우연(과 필연)의 문제는 박치우, 미키 기요시, 구키 슈조 등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운명’ 개념과 연관해 사유된다.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신남철은 헤겔 철학을 비판적으로 연구해 한국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세번째 문제는 주체적 실천의 문제이다. 헤겔의 사유에서 한 개인의 역사철학적 의미는 그가 얼마나 보편적 정신에 스스로를 합치해 나갈 수 있는가에 의해 평가된다. 그러나 신남철은 이에 대해 인간 개인의 주체적 실천을 강조한다. 헤겔에게 세계란 절대정신이 자신의 이념들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며, 개개인은 그 과정의 구현자들이다. 그는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오직 이념이 자기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의 수단의 분야[장](das Feld des Mittels)[일 뿐]이라고 규정했다.(‘역사에서의 이성’)” 그러나 신남철은 헤겔의 이런 사유에서 “역사 추진의 원동력을 이루는 노동적 생산의 사회적 체계 속에 나타나는 모순적 관계에서의, 인간 개인의 정치적 주체적 실천에 대한 자각은 분명하지 않았다. 이 개인은 어디까지나 궁극에 있어서는 신(神)이 이념적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역사의 발전과 개인의 실천’)
신남철은 이렇게 헤겔의 인식론-역사철학을 다각도로 비판했고, 특히 물질적 객관성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입장은 분명한 각을 이룬다(다만 신남철은 이 주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적 실존의 문제와 주체적 실천의 문제에 관한 그의 논의는 사실 헤겔 사유의 기본 구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그리고 한국 철학의 맥락으로 가져와 새롭게 사유한 것이었다.
신남철에게 참된 개인이란 역사적 일반자에게 봉사하는 개인이다. 역사는 개인에게 운명으로서 다가온다. 개인은 그 운명과 투쟁하면서 일반자를 실현한다. 박치우와 마찬가지로, 신남철은 숙명과 운명을 구분한다. 숙명은 자유를 부정하는 필연일 뿐이다. 그러나 운명은 인간의 자유를 시험하는 필연이다. 운명과의 투쟁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필연과 맞서는 자유의 투쟁인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결코 감격이나 애수의 동기는 되지 않는다. 운명의 이념의 심연은 ‘엄숙’(Ernst)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엄숙’에 의하여 인간은 스스로 세계와의 관련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역사의 발전과 개인의 실천’) 이런 구도는 곧 그가 높이 평가하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관류했던 ‘운명 vs 역능’(fortuna vs. virtù)의 구도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그는 헤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우연적 실존의 역할과 의의를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라는 틀 속에 용해시키기를 거부한다. 아울러 이러한 투쟁은 항상 물질적 객관성의 차원, 신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함도 역설된다.
이 점은 현재에 대한 그의 강조에서도 드러난다. 헤겔적 목적론에서 현재는 시간 전체의 한 매듭일 뿐이다. 그러나 신남철은 주체적 실천의 시간은 현재임을 지적한다. 현재는 역사적이고 주체적인 시간이며, 필연이 자유로 전환하는 투쟁의 시간이고 또 역사적 방향이 전환되는 시간이다. 그것은 사건의 시간으로서의 아이온의 시간인 것이다. 현재는 주체의 실천에 의해서 아이온의 시간이 된다. 달리 말해, 주체적 실천에 있어서만 시간은 현재가 된다. 이 현재에서 주체는 세계정신의 자기실현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 실천은 이런 희생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은 “자기를 헌신하고 방기하는 개인”이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의 운명은 개인을 가혹하게 몰아대지만, 바로 그런 시련에서 개인은 운명적인 비극을 사는 동시에 “이름 없는 혁명가”라는 위대한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개인이 헌신해야 할 일반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신남철 시대의 개인이 헌신해야 할 일반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신남철에게 그것은 곧 한민족의 “완전 해방”이었다. “조선의 완전 독립과 사회적인 해방이 끓어오르는 열정을 진보적 계급의 정치적 노선에 경주(傾注)함에 의해서만 완수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위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역사의 발전과 개인의 실천’) 신남철의 문제는 일제의 잔재를 타파하는 것, 그리고 민족, 계급, 문화라는 세 측면에서 한민족의 완전 해방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철학자 이정우.
철학자 이정우 l 서울대학교에서 미셸 푸코로 학위를 받았다. 대안공간 철학아카데미에서 시민 강좌를 열었고, 지금은 소운서원에서 후학 양성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철학사’ 4부작(2011~2024)을 펴냈고, 현재는 ‘소운 철학 대계’를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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